짐을 싸고 푸는 하루를 물건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적은 글입니다. 사건은 거의 없고 손에 잡히는 것들만 이어집니다. 이 사이트의 훈련용 지문입니다.
이 글에 대하여
사물을 차례로 따라가는 구조입니다. 책, 주방 서랍, 옷장 속 상자, 냉장고, 액자 자국 순으로 옮겨 가는데, 각 대목이 앞뒤와 느슨하게만 이어져 있습니다.
자료실의 다른 서사문과 짜임이 다릅니다. 「등대지기의 마지막 겨울」과 「시계를 고치는 사람」은 시간 순으로 사건이 이어지지만, 이 글은 한 장면 안에서 물건 사이를 옮겨 다닙니다.
읽기 데이터
아래 수치는 이 페이지에 실린 본문을 그대로 세어 계산한 값입니다.
| 글자 수 | 2,001자 | 어절 수 | 550어절 |
|---|---|---|---|
| 문단 수 | 17개 | 문장 수 | 67개 |
| 평균 문장 | 8.2어절 | 가장 긴 문장 | 25어절 |
| 대화 비율 | 문단의 0%가 따옴표로 시작합니다 | ||
| 읽기 속도 | 200 WPM | 300 WPM | 400 WPM | 500 WPM |
|---|---|---|---|---|
| 예상 시간 | 2분 45초 | 1분 50초 | 1분 23초 | 1분 6초 |
한국어 성인의 평균 읽기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WPM 기준표에서 다뤘습니다.
속독 훈련 관점에서
대화 0%, 평균 문장 8.2어절, 문단 17개입니다. 문단마다 다루는 물건이 바뀌어서 끊어 읽을 자리가 분명합니다.
느슨하게 이어진 글은 한 문단을 놓쳐도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. 그래서 빨리 읽어도 막히지 않는데, 대신 다 읽고 나서 무엇이 있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 일이 생깁니다. 퀴즈로 확인해 보세요 — 문항은 전부 본문에 적힌 이유를 묻습니다.
문단 훈련으로 재면 속도가 비교적 고르게 나옵니다. 「아직도 믿고 있는 이야기들」처럼 앞 내용을 붙들어야 하는 글과 번갈아 읽어 보면, 글의 짜임이 속도의 기복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입니다.
추천 모드 — 문단 훈련, 책 읽기. 각 모드가 무엇을 훈련하는지는 읽기 가이드에 정리해 두었습니다.
이 글로 훈련하기훈련 화면의 "저장된 글 불러오기"에서 이사하는 날 (긴 글)을 고르면 됩니다.
본문
짐을 싸다 보면 그 집에서 산 시간이 물건의 수로 환산된다. 혼자 살기 시작할 때 가져온 것은 상자 네 개였다. 지금 거실에 쌓인 상자는 열아홉 개다.
책부터 묶는다. 책은 무거워서 큰 상자에 담으면 들 수가 없다. 작은 상자에 눕혀서 절반만 채우고 빈자리는 수건으로 메운다. 책등이 위를 보게 넣으면 나중에 풀 때 순서를 다시 잡기 쉽다. 이건 지난번 이사에서 배운 것이다. 그때는 아무렇게나 쏟아 넣었고, 새 집에서 사흘 동안 바닥에 책이 깔려 있었다.
주방 서랍에서 나온 것들은 대부분 버린다. 언젠가 쓸 것 같아 모아 둔 젓가락 한 짝, 뚜껑 잃은 반찬통, 용도를 알 수 없는 부속. 버리기로 정하고 나면 결정은 빨라진다. 망설이는 시간이 짐을 늘린다.
옷장 맨 아래 칸에서 상자가 하나 나온다. 지난 이사 때도 열지 않고 그대로 옮겨 온 상자다. 이번에도 열지 않을까 하다가 테이프를 뜯는다. 사진 몇 장, 대학 때 쓰던 공책, 고장 난 전자사전, 그리고 편지 묶음. 편지는 읽지 않고 도로 넣는다. 지금 읽으면 오늘 안에 짐을 다 못 쌀 것을 안다.
전자사전은 버리기로 한다. 켜지지 않은 지 오래됐고, 고칠 방법도 없고, 같은 기능이 이미 주머니 속 전화기에 들어 있다. 그런데 손에 들고 한참을 서 있게 된다. 쓸모가 사라진 물건과 의미가 사라진 물건은 다르다는 것을, 버리려고 손에 들었을 때에야 알게 된다.
냉장고를 비운다. 유통기한이 지난 소스 병 세 개, 얼린 채로 잊은 밥 네 덩이, 언제 넣었는지 모를 다진 마늘. 냉장고는 잊어버린 것들이 모이는 곳이다. 문을 닫으면 안 보이기 때문이다.
벽에서 액자를 떼어내면 그 자리만 색이 다르다. 사 년 동안 그 부분에만 볕이 닿지 않았다. 벽지가 바랜 속도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남아 있다. 사는 동안에는 몰랐던 변화다.
정오가 지나면서 집이 비어 간다. 가구가 빠지자 방이 넓어 보이고, 동시에 낯설어진다.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도 비어 있었다. 그때는 이 방이 이렇게 작았나 싶었는데, 지금은 이렇게 컸나 싶다. 같은 방인데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크기가 다르다.
마지막으로 청소를 한다. 어차피 다음 사람이 다시 할 텐데도 쓸고 닦는다. 침대가 있던 자리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고, 책장 뒤에서는 굴러 들어간 동전 몇 개와 잃어버린 줄 알았던 이어폰 한 짝이 나온다. 이어폰은 나머지 한 짝을 이미 버린 뒤다.
사다리차가 오는 시간은 열한 시로 잡혀 있다. 창문으로 짐을 내리는 편이 계단으로 나르는 것보다 훨씬 빠르지만, 그 창문까지 짐을 옮겨 놓는 일은 결국 사람이 한다. 상자를 들고 방과 창가를 오가는 동안 같은 자리를 몇 번씩 지나게 되고, 그러다 보면 이 집의 동선이 어떻게 생겼는지 사는 동안보다 더 정확히 알게 된다.
아래층 사람이 올라와서 소리가 크다고 한다. 미안하다고 하고, 몇 시쯤 끝나는지 알려준다. 사 년을 살면서 얼굴을 본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. 나가는 날에야 인사를 제대로 하게 되는 관계가 있다.
문을 잠그기 전에 한 번 돌아본다. 볼 것은 없다. 그래도 돌아보게 된다.
짐을 다 뺀 차가 출발하면 잠깐 할 일이 없어진다. 빈 집에 서서 열쇠를 손에 쥐고 있는 그 몇 분이 이사에서 가장 조용한 시간이다. 그다음부터는 새 집에서 다시 바빠진다.
새 집에서 상자를 푸는 데는 짐을 싸는 것보다 오래 걸린다. 쌀 때는 순서가 있지만 풀 때는 없다. 어디에 무엇을 둘지 정하면서 풀어야 하는데, 그 결정을 상자 열아홉 개만큼 해야 한다.
첫날에는 당장 쓸 것만 꺼낸다. 이불, 수건, 칫솔, 충전기. 그다음 날은 주방이다. 그릇을 어느 칸에 넣을지 정하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. 전에 살던 집에서는 몸이 알아서 움직였는데, 여기서는 매번 문을 두 번 연다.
사흘이 지나도 상자 세 개가 남는다. 그중 하나는 옷장 맨 아래 칸에 그대로 넣는다. 열지 않은 채로.
다음 이사 때 또 나올 것이다. 그때도 아마 열지 않을 것이다. 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상자가 하나쯤 있는 것이, 집이라는 것을 이루는 조건인지도 모르겠다.
이해도 퀴즈 6문항
본문을 다 읽은 뒤에 풀어 보세요. 모든 문항은 위 본문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내용으로만 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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책을 쌀 때 작은 상자에 절반만 채우는 이유는?
- 책이 상할까 봐
- 무거워서 큰 상자에 담으면 들 수 없기 때문에
- 상자가 모자라서
- 순서를 맞추려고
정답 보기
1번 문항의 정답은 2번 — 무거워서 큰 상자에 담으면 들 수 없기 때문에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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책등이 위를 보게 넣는 이유로 나온 것은?
- 공간을 아끼려고
- 나중에 풀 때 순서를 다시 잡기 쉬워서
- 먼지가 덜 앉아서
- 더 많이 들어가서
정답 보기
2번 문항의 정답은 2번 — 나중에 풀 때 순서를 다시 잡기 쉬워서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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옷장 맨 아래 칸에서 나온 상자에 대해 화자가 한 일은?
- 그대로 버렸다
- 테이프를 뜯어 열어 보았다
-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
-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다
정답 보기
3번 문항의 정답은 2번 — 테이프를 뜯어 열어 보았다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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편지를 읽지 않고 도로 넣은 이유는?
- 내용이 다 기억나서
- 지금 읽으면 오늘 안에 짐을 다 못 쌀 것을 알아서
- 글씨가 지워져서
- 남의 편지라서
정답 보기
4번 문항의 정답은 2번 — 지금 읽으면 오늘 안에 짐을 다 못 쌀 것을 알아서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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액자를 떼어낸 자리에 대해 관찰한 것은?
- 못 자국이 크게 남았다
- 그 부분만 볕이 닿지 않아 색이 다르다
- 벽지가 찢어졌다
- 곰팡이가 생겼다
정답 보기
5번 문항의 정답은 2번 — 그 부분만 볕이 닿지 않아 색이 다르다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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글의 마지막에서 화자가 말한 것은?
- 다음에는 짐을 줄이겠다는 다짐
- 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상자가 집을 이루는 조건일지 모른다는 것
- 이사가 즐거웠다는 것
- 새 집이 더 넓다는 것
정답 보기
6번 문항의 정답은 2번 — 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상자가 집을 이루는 조건일지 모른다는 것입니다.